클래식 / 바로크 · 1970–73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이 음반을 듣는 이유
한 대의 피아노 안에서 여러 선율의 길을 따라가며, 같은 건반이 만드는 서로 다른 시간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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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이야기
작품과 이 연주
첫 전주곡의 고른 음형을 듣다가 푸가로 넘어가면, 한 대의 피아노 안에 여러 사람이 들어온 듯하다. 리히테르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모든 음을 한꺼번에 이해하려 하기보다 하나의 선율을 골라 따라갈 때 가까워진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울림과 그 안에서 방향을 바꾸는 선을 함께 듣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다.
바흐의 작품은 두 권으로, 각 권에 장조와 단조 스물네 조의 전주곡과 푸가가 한 쌍씩 담긴다. 합하면 마흔여덟 쌍이며, 이 배포판은 두 부분을 나누어 아흔여섯 트랙으로 제공한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리히테르가 현대 피아노로 남긴 스튜디오 녹음이다. 제1권은 1970년 잘츠부르크, 제2권은 1972년 잘츠부르크와 1973년 빈에서 녹음했다. 작품의 성립 시기, 연주가 녹음된 시기, 지금 연결한 재발매의 연도는 서로 다르다.
쌍으로 듣는 작은 세계
전주곡에서는 반복되는 음형이나 하나의 몸짓이 분위기를 정하고, 뒤따르는 푸가에서는 짧은 주제가 다른 높이의 선율로 이어진다. 성부란 이런 독립적인 선율의 흐름을 뜻한다. 항상 맨 위의 음만 멜로디라고 생각하면 아래에서 시작되는 대화를 놓치기 쉽다. 처음 들은 주제가 다시 나타날 때마다 귀를 그쪽으로 옮겨 보자. 한 쌍을 듣고 잠시 쉬어도 곡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며, 다음 조로 넘어가면 피아노의 같은 음색 안에 다른 분위기가 열린다.
조율 이름을 감상의 정답으로 삼지 않기
한국어 제목의 평균율을 오늘날의 균등한 반음 간격과 곧바로 동일시하면 작품의 배경을 좁히게 된다. 원제의 잘 조율된 건반이 어떤 조율을 뜻했는지는 연구에서 논쟁이 남아 있다. 여기서는 모든 장조와 단조를 거치는 구성을 먼저 이해하면 충분하다. 리히테르의 피아노 연주를 바흐 시대 악기의 복제품처럼 판단하기보다, 음이 사라지는 길이와 서로 겹치는 선을 어떻게 다루는지 들어 보자. 역사적 악기와 다른 수단으로 이 음악을 읽는 하나의 해석이다.
전곡보다 먼저 한 쌍
연결한 것은 2014년 Musical Concepts의 재발매이며, 1973년 인스브루크 실황 전곡과 구별된다. 전체가 네 시간 반가량이라 한 번에 끝낼 필요는 없다. 제1권 첫 곡의 전주곡과 푸가를 듣고, 다음에는 제2권의 같은 번호나 다른 조를 골라도 좋다. 익숙한 부분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낮은 성부를 따라가면 처음과 다른 곡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오래 듣는 양보다 같은 음악에 주의를 달리 주는 경험이 이 긴 모음집을 일상에 들이는 방법이다.
곡으로 읽는 앨범
푸가에서 처음 들은 짧은 주제가 다른 높이로 다시 들어오는 순간을 찾아본다.
다른 관점으로 들어보기
먼저 작품의 흐름을 따라 듣고, 다시 들을 때는 선율의 호흡과 악기 사이의 균형에 집중해 보세요. 작품의 특징과 이 연주만의 선택을 나누어 들으면 비교가 더 쉬워집니다.
Book I: Prelude No. 1 in C Major, BWV 846
고르게 펼쳐지는 짧은 음형 안에서 화음이 조금씩 바뀐다. 제1권 첫 번째 쌍의 전주곡으로, 바로 뒤에 같은 작품 번호의 푸가가 이어지지만 배포판에서는 별도 트랙이다. 처음에는 위로 흐르는 음을 따라가고, 다시 들을 때는 낮은 음이 움직일 때마다 전체의 빛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반복되는 손의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매 순간 같은 화음을 듣는 것은 아니다. 리히테르의 연주에서는 음이 생기는 순간뿐 아니라 다음 음 뒤로 남는 울림에도 귀를 둘 수 있다. 끝의 멈춤까지 듣고 푸가로 넘어가면, 연속된 흐름에서 여러 선율이 말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바뀌는 감각이 선명해진다. 유명한 도입부를 알아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익숙한 음형 안에서 긴장이 쌓였다 풀리는 방향을 찾아보면 좋다.
참고 자료 · Alto ALC4003 official booklet: works, track order and 1970/1972/1973 sessionsBook II: Fugue No. 9 in E Major, BWV 878
서두의 짧은 주제를 기억하면 길게 이어지는 음악 속에서 돌아올 자리를 얻는다. 제2권 아홉 번째 쌍의 푸가이며, 이 판본에서는 앞의 전주곡과 따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둘을 이어 들어, 앞부분의 흐름이 푸가의 걸음으로 바뀌는 차이를 느껴 보자. 여기서는 가장 높은 음을 계속 따라가기보다 처음의 주제가 다른 높이에 나타날 때 주의를 옮기는 편이 도움이 된다. 새 성부가 들어와도 먼저 시작한 선율은 사라지지 않고 함께 움직인다. 리히테르의 피아노를 하나의 화음 덩어리로 듣던 귀가 여러 방향을 오가는 선에 익숙해지는 지점이다. 모든 진입을 세거나 악보를 분석할 필요는 없다. 놓쳤다면 다음에 알아듣는 주제부터 다시 따라가며, 겹친 선율 사이에서도 긴 문장이 유지되는 느낌을 들어 보자.
참고 자료 · Alto ALC4003 official booklet: works, track order and 1970/1972/1973 sessions
이어서 들을 음반
굴드의 1955년 Goldberg Variations와 비교해, 바흐의 서로 다른 건반 작품을 두 피아니스트가 조직하는 방식을 듣자.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1955년 녹음) ↗참고 자료와 편집 안내
음반 정보는 아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감상 제안은 편집적 해석이며, AI 관점별 검수로 실제 독자 조사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 Alto ALC4003 official booklet: works, track order and 1970/1972/1973 sessions · media.musicalconcepts.net
- Apple Music: Richter, Musical Concepts 2014 complete 96-track edition · music.apple.com
- Mark Lindley, Staatliches Institut für Musikforschung: well-tempered tuning and scholarly disagreement · www.simpk.de
- Parnassus: separate 1973 Innsbruck live cycle and dates · www.parnassusrecords.com